한국교회순례6 경동교회

  조회수 : 941    / 등록일 :    / 출처(저자) : 국민일보



제목 : <한국의 교회순례:6> 경동교회

⊙45년 김재준·강원용 목사 주축 『선린형제단』 설립/변화·아픔통 해
『약속』 성취… 질시·박해의 역사/장로교분열 상처딛고 새출발/신앙토착
화 앞장서는 선구자/새성전 예배·만남·축제 이미지 서울 광화문을 조금
못미쳐 장충동쪽으로 돌면 왼편에 중세기 고성과 같은 붉은 벽돌 건물이 지
나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경동 교회다. 이 교회는 『출애굽의 교회
』라고 불린다. 자유를 향해 모든 억압으로부터 탈출을 부단히 시도하고 있
기 때문이다. 경동의 출애굽은 1945년 김재준목사와 강원용목사등이 중국
간도 용정에 피난,선린 형제단을 조직해 전도사업등을 벌이다 공산당의 압
박때문에 남한으로 월남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선한 이웃의 형
제들이란 뜻으로 스스로를 선린형제단이라 불렀다.

월남한 선린형제단들은 현 경동교회 자리를 거점으로 전도활동에 들어갔
다. 북에 고향을 두고온 기독학생들의 소망의 장이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었다. 무엇보다 선교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한 형제단은 45년 12월2일
주일을 기해 『선린형제단 전도관』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시작했다. 그
후 1년뒤 형제단 전도관은 사회참여에 열성이 있다는 주위의 평가에 따라
『성 야고보 전도교회』로 명칭을 바꿨으나 당시 경기노회가 카톨릭에서 사
용하는 이름이라는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경동교회로 다시 변경했다.
경동도 6·25전쟁의 참화를 입었다. 1950년 7월부터 예배를 중지하고 1949
년에 안수받은 강원용 목사와 당회장 김재준 목사가 도농으로 피난해 있었
기 때문에 9·26수복까지 교회는 해산상태였다.
그동안 많은 청년 교우들이 순교를 당했고 폭격으로 교회건물은 잿더미로
변했다. 동란의 와중에서도 장로교회의 분열은 계속됐음을 한국 교회사는
증언하고 있다. 1953년 대구에서 열린 장로회 38차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의
파면은 기장의 출발을 선포한 분기점이었으며 동시에 오늘의 경동을 가능케
한 변혁과 아픔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아픔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목사는
출애굽의 맥박을 경동에 이식하고 1958년 은퇴,강원용 목사가 그 배턴을
이어 받았다. 경동은 『변혁과 아픔은 곧 약속의 성취』라는 비전을 안고
현실참여를 못마땅히 여긴 권력으로부터 질시와 박해를 받기도 했다. 거의
매일 사복경찰은 물론 군인과 전경등이 경동의 주위를 삼엄하게 감시했던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경동은 토착화 신학에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1974년 9월부터 추수감
사절 예배를 추석에 맞춰 드리기 시작했다. 추수감사절의 메시지를 고유 명
절에 담아 새로운 축제의 모형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경동인들은 80년 9월 지금의 경동의 모습을 빚어냈다. 『역사의 현장
에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그것에 응답하기 위해 지금의 모습을
출산시켰다고 경동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당시 설계자였던 김수근씨(공
간연구소장)의 설계개념을 보면 우선 교회당의 외형과 내부에 다양성속의
일치를 나타내는 에큐메니컬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경동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깊은 침묵을 간직한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겸허한 자세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자태속에서 예배의
장,만남의 장,축제의 장등 3가지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
서면 보통 있어야 할 철문등이 보이지 않는다. 만민이 기도하는 교회임을
드러내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빛을 받으며 우뚝 서 있는 십자가의
위엄이 가득하다. 하늘로부터 십자가를 통해 비춰지는 빛이 죄인을 용서하
고 은혜를 주시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깨닫도록
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면 기둥으로부터 연결된 장중한 빔
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그 모습은 언뜻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
한한 힘을 지탱하고 있는 빔은 성도들이 손을 잡고 연결된 모형을 본뜻 것
이다.

제단은 비어 있다. 목사나 장로가 앉을 의자가 없다. 마치 휘장이 찢어진
지성소이거나 만인 제사장의 심벌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는 단색 십자가를 향했는데 나갈때는 여러 형태,여러 색상의 십자가를
확연히 볼 수 있다. 경동인들이 각자 세상으로 지고 나갈 십자가를 상징하
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출입문을 나서 옥상에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인 옥상교회가 극장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특히 젊은이들의
축제가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햇빛과 별빛아래서 펼쳐진다.
따라서 경동인들은 지금도 출애굽의 여정에 가담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
영원과 이어지는 교회의 보편성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다』고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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